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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 과거 문제

오마갓 2017. 7. 15. 00:34

過去 問題 [과거 문제]

옛날 아주 옛날, 우리 나라에 몹시 어진 임금이 한 분 있었습니다. 아무쪼

록 다스려가는 데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항상 백성들의 살아

가는 모양을 보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래 가끔 가끔 한 지나가는 행인처럼

복색을 차리고, 다만 혼자 남의 눈에 뜨이지 않게 백성들 틈에 끼어서, 거

리를 돌아다니고 돌아다니고 하였습니다.

하룻밤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듯 싶은 쓸쓸스런 동네를 거닐려니까,

어느 조그만 쓰러져 가는 집 속에서, 이상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습니다.

“대체 우습기도 하다. 노래하는 소리가 울음 소리 같구나!”

하고, 임금은 가깝게 가서 그 다 쓰러진 오막살이집 뚤어진 창 틈으로 가만

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보니까, 이상한 일도 많지요. 이십 오륙 세 되어 보이는 아름답게 생긴 젊

은 여자가, 머리는 중처럼 새빨갛게 깎고, 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고, 그 옆

에 삼십 세쯤 된 마른 남자가 한 사람이 앉아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우

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점점 이상하여, 이 집이 혹시 도깨비집이나 아닌가 싶어, 더욱 궁금한 마

음으로, 두 눈을 씻고 자세히 들여다본즉, 그 두 남녀의 옆에는 한 늙은 영

감이 엎드려 흑흑 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하하 이것은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는 모양이다!”

하고, 임금은 참다 못하여 그 다 쓰러져 가는 이상한 집 대문을 열고, 쑥

들어갔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길 가는 사람이올시다만, 묻고 갈 것이 있어서 들어왔는

데, 대체 당신들이 울면서 노래를 부르고, 젊은 부인이 머리를 깎고 춤을

추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집의 세 사람은 그가 임금인 줄은 알지 못하나, 지나가는 행인이로되,

보아하니 점잖고 귀하게 생긴 인물이라, 의심할 것 없이 엎드려 울던 영감

이 일어나서 숨김없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른 것은 우리 아들이고, 춤을 추던 머리 깎

은 여자는 우리 며느리랍니다. 나는 몸이 늙은 위에, 벌써 삼 년 전부터 고

치지 못할 중병이 들어서, 이 날까지 마당에도 내려가 보지 못하고 앓고만

있는데, 요사이는 아들까지 병이 들어서 돈벌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 며느리가 여자의 몸으로 품삯을 팔아서 우리 부자를 먹여 오기는 하였

으나, 약 한첩 지어 올 돈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오늘 다리꼭지 장수가 와

서, 우리 며느리의 머리가 좋은 것을 보고, 하도 탐스러워서 ‘돈을 많이

줄 터이니 팔지 않을 터이냐?’고 하기에, 내가 안 판다고 하였건만, 며느

리가 우리 모르는 동안에 자기 머리를 빨갛게 깍아서 팔아 버렸습니다그

려……. 그래, 그 돈으로 우리 부자의 약을 사 온다고 하기에, 약값은 장만

되었으나, 내 마음에 며느리가 하도 불쌍하여서 눈물을 흘리고 울고 있으니

까, 우리 아들이 효성스런 사람이라 나를 위로하느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부르기는 부르지만 제 마음도 슬퍼서 그렇게 우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답니

다. 그러니까, 우리 부자의 마음을 위로하느라고 머리를 깎은 며느리가 그

렇게 춤을 추고 있었답니다.”

이야기하는 중에도 슬픔을 못이겨 흑흑 느껴가며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

임금님도 눈물이 흐르는 것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이보다

더 마음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들은 다시 없으리라고, 더할 수 없이

감복하였습니다.

“참말 감복할 일입니다. 이렇게 착하고 효성스런 사람이 만일 이 나라에

제일 높은 대신이 된다 하면, 얼마나 백성을 친절하게 잘 다스리겠습니

까.”

하니까, 세 식구는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예엣? 대신이 되라구요?”

“정말입니다. 당신 같은 이가 이 나라 대신이 되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옳지, 내일 모레 아침부터 대궐 안에서 큰 과거를 보이니, 그 날 가서 과거

를 보아 대신이 되십시오”

하였습니다.

“처, 처, 천만예요. 저는 인제 간신히 편지나 한 장 쓸 만밖에 못되는데

요. 대신이 무업니까.”

“아니오. 대신 노릇은 반드시 글을 잘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

든지 그 날 가서 보시구려……. 문제는 아주 쉽게 날 터이니!”

하고, 임금은 아무쪼록 그 날 과거를 보라고 친절히 권하고, 그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이상한 행인이 나간 후에 세 식구는 의논이 분분하였으나, 모두 생각하기

에 암만해도 그 사람이 보통 행인이 아닌 모양이니, 그 말대로 과거를 보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대궐 안에서는 큰 과거를 보인다고 천하에 글 잘하는 학자란 학자는 모두 모여들어서 

장안이 벌컥 뒤집힌 것 같았습니다.

제각기 장원할 듯이 잘 차리고 거드럭거리면서, 대궐로 모여 들어가는 학자

들 틈에, 더러운 해진 옷을 입은, 그 울면서 노래를 부르면 불쌍한 아들도

섞이어 있었습니다.

모든 학자들이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무슨 문제가 나려노?”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윽고 내어 걸린 문제를 보니까,

父泣(부립 ; 아비는 울고)

夫歌(부가 ; 지아비는 노래부르고)

婦舞(부무 ; 며느리는 춤추다.)

이러하였습니다.

난다 긴다 하는 학자들도, 아무리 고개를 이리 틀고 저리 틀고 하면서 궁

리하여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암만 머리를 썩히고 생전에 배운 것을

다 생각해 보아도, 아무 책에도 그런 것이 적히어 있는 책이 없었습니다.

생각하다 못하여, 아무렇게나 우물쭈물 써 들여간 사람도 있고, 또는 아무

것도 못 쓰고 흰 종이를 그냥 바치어 모두들 낙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한 문제를 잘 알고 글을 잘 지어서 급제하여 뽑힌 사람이

단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이 대신이 되었을 때, 대신의 부인은 머리가 없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나라를 잘 다스리고, 부인은 시아버지를 잘 봉양하여 늙도록 잘

살았습니다.

<≪어린이≫, 1925년 7월, ≪소파 전집≫(박문 서관 간) 대조>

방정환 ( 1899-11-09 ~ 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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