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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 귀먹은 오리집

오마갓 2017. 7. 15. 00:29

귀먹은 집오리

널따란 연못에 하얗고 어여쁜 집오리 두 마리가 길리우고 있었습니다. 두

마리가 모두 수컷이고, 모양도 쌍둥이같이 똑같았습니다.

그 중 한 마리는 불쌍하게 귀가 먹어서, 사람의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

는데, 다른 놈은 귀가 몹시 밝아서 사람들이 가는 소리로 소근거리는 소리

까지 잘 알아들으면서도, 귀먹은 오리를 잘 보아 주지 아니하고, 늘 속이기

만 하였습니다.

매일 세 차례씩 주인집 아이가 연못가에 나와서, 땅 위에 먹을 것을 줍니

다. 그 때마다 귀 밝은 오리가,

“사람이 먹이를 줄 때 잘못 어릿어릿하다가는 잡히기 쉬우니까, 내가 먼

저 가서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서, 위험하지 않거든 부를 것이니, 그

때에 오라.”

고 속이고 제가 먼저 가서 싫도록 먹은 후에, 겨우 귀머거리를 불러서, 나

머지를 먹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귀머거리 오리는 속는 줄도 모르고, 대단히 친한 동무로만 믿고,

날마다 찌끼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 줄을 모르고 주인 집 아이는 잡힐 줄

만 알고 있는 귀머거리를 ‘저 오리는 웬일인지 길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녁때, 주인 영감이 연못가에 와서 먹이를 뿌리면서,

“이 오리는 두 마리가 다 알을 낳지 않으니까, 오늘은 한 마리를 잡아먹

어야겠다.”

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소리를 벌써 알아듣고 귀밝은 놈이 계교를 내서 귀

머거리를 보고,

“여보게, 오늘은 잡힐 염려가 없으니 같이 가세.”

하였습니다.

귀머거리는 속는 줄은 모르고 즐겨하면서, 귀밝은 놈을 따라 함께 먹으러

나갔습니다. 먹이를 한참 먹고 있노라니까, 별안간에 주인이 달려들면서,

오리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줄 미리 알고 귀밝은 놈은 처음부터 눈

치만 채고 있다가, 얼른 연못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잡힌 것은 불쌍한

귀머거리였습니다. 귀밝은 놈에게 속은 줄은 알지 못하고, 날개를 잔뜩 붙

잡힌 채로 매어달려서 푸덕거리면서 소리쳐 울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주

인 아이가 쫓아와서,

“아버지, 그 오리를 왜 잡으셨습니까? 길도 잘 들었는데…….”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그 오리가 늘 먼저 나와서 먹이를 잘 먹는 오린

줄 알고, 물 속에 있는 오리는 늘 나중에 나오는 오리여서, 오늘도 이 때까

지 아니 나온 줄 알았습니다. 주인 영감은 아이를 보고,

“알을 아니 낳으니까 잡아먹으련다.”

하니까, 아이는,

“그 오리는 길도 잘 들고 귀여우니 놓아 주시고, 잡으시려면 저 연못에

있는 놈을 잡으십시오. 저놈은 길도 안 들고 먹이도 나중에 나와서 먹는 놈

이니까요.”

하였습니다.

주인은 그럼 길 안든 오리를 잡기로 하자고, 그 잡았던 오리 발목에 헝겊을

감아서 놓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렇게 길 잘 든 놈은 표를 해 두었다가, 이따가 밤에 자러 들어가거든

발목에 헝겊 없는 놈을 잡으면 된다.”

하였습니다.

물 속에서 귀밝은 놈이 벌써 알아들었습니다. 애써 계교를 내어, 귀먹은

놈이 잡히도록 하였더니, 이번에는 제가 잡히게 되었으므로, 또 계교를 내

었습니다. 그래서, 귀먹은 오리를 보고,

“여보게, 자네 큰일 났네. 자네 발목에 맨 헝겊이 바로 오늘 밤에 잡혀

죽을 표일세. 지금 얼른 풀어 버리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귀머거리는 꼭 그걸 풀면 제가 죽게 되는 줄을 모르고,

“아르켜 주어서 대단히 감사하이.”

하고, 절을 하면서 입으로 그 헝겊을 풀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귀밝은 놈은 속으로, ‘옳지, 이제 됐다.’하고 기뻐하면서, 던

지는 그 헝겊을 제 발목에다 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매려고 애

를 써도, 자기 입으로는 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좋을까?’

하고 이 궁리 저 궁리 하고 있는데, 그 동안에 벌써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어두워 갑니다. 하는 수 없이 귀밝은 놈은 또 다른 꾀를 내어, 귀먹은 오리

를 잡히게 하려고,

“여보게, 오늘은 자네가 먼저 들어가 자게. 나는 사람들이 무슨 의논을

하는지 듣고 와서 자겠네…….”

하였습니다.

귀머거리는 안심하고 자러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귀밝은 놈은 ‘옳지

인제 저 놈만 잡히게 되었다.’ 생각하고 즐거워하면서, 

저는 연못가 으슥한 곳에 가서 숨어 앉아서 귀머거리가 잡혀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밤에 연못가에서 ‘끼룩 끼룩’ 하고 괴롭게 오리가 우는 소리가 나므

로, 주인과 그 아이가 뛰어가 보니, 오리 한 마리가 집에 들어가지도 안고

연못가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자빠져 있었습니다.

“에에, 족제비에게 물려 죽었구나……. 그러나, 마침 발에 헝겊 없는, 길

안든 오리였다.”

하고 주인이 말하니까, 아이가 오리집을 들여다보고 나서,

“아버지, 이 오리에도 헝겊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귀밝은 놈이 여러 번 귀머거리를 죽게 하였으나, 결국 제가 죽은 것이었습

니다.

<《어린이》 3권 5호, 1925년 5월호, 소파>

방정환 ( 1899-11-09 ~ 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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